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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배 교수 칼럼】예절은 ‘극한사회’를 헤쳐나가는 지혜다
2024년 02월 22일 [새용산신문]


박상배 순천향대학교 에너지공학과 초빙교수 / 전 한국가스기술공사 상임감사

끝 난지 언제인데 온갖 험담이 끊이질 않는다. 카타르 아시안컵 도중 발생한 이른바 ‘하극상 사건’은 그 어느 때 보다 파장이 거셌다.

현존 최고 스타와 떠오르는 미래 스타 간의 충돌로 벌어진 사태이기도 하지만, 엄중한 게임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이른바 ‘황금세대’의 허상과 민낯을 드러낸 데서 반향 또한 서슬이 퍼렜다. 유로파 현역선수들에 대한 관심도 한몫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동방의 예절과 절제의 미(美), 그 가치 중심을 자부하는 한국이다.

그런 나라 국가대표팀에서 벌어진 일이 외신의 구설수에 오른 것부터가 국내 축구 팬들의 실망과 자존심을 거슬렸다. 다행히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지 일주일만인 21일 사과와 화해로 일단락되는듯하다. 영국 매체 더선과 대한축구협회 설명을 종합하면 아시안컵 준결승전 요르단과의 경기 전날 저녁 시간, 이강인 등 젊은 선수 몇몇이 저녁 식사를 일찍 마치고 탁구를 치러 갔다.

팀 분위기를 생각한 손흥민이 이를 제지하다가 두 사람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일견 팀워크 중요성과 사적영역을 중시하는 ‘신구(新舊)’간의 차이, 동시대를 사는 젊음 속에서도 다른 사고방식이 교차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과정에서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구된 것이 이번 파문의 전모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도 있듯 결과가 내용을 좌우한다. 스포츠 세계의 특성이다. 구슬이 서 말이면 뭐하나 꿰어야 보배인데, 한국 축구는 많은 스타를 보유하고도 이를 한 팀으로 엮지 못한 것이 주된 패인으로 들춰졌다. 구슬 꿰기에 실패한 것이다.

전술적 심리적 용병술을 둘러싼 게임 운용전략서부터 대표선수단 관리, 대표팀 감독의 무능과 선임과정, 협회장의 독단과 협회 운영에 이르기까지 이번 내분과 갈등의 불똥은 한국 축구계 사방팔방 옮겨붙기가 일파만파다.

뒤늦긴 했으나 이강인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손흥민에게 직접 찾아가 사과했고,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은 이런 사실을 밝힌 지 약 한 시간 만에 “강인이를 특별히 보살피겠다”고 호의를 보였다.

손흥민은 “저도 어릴 때 실수도 많이 하고 안 좋은 모습을 보였던 적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좋은 선배님들의 따끔한 조언과 가르침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강인이가 이런 잘못된 행동을 다시는 하지 않도록 저희 모든 선수들이 대표팀 선배로서 또 주장으로서 강인이가 보다 좋은 사람,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옆에서 특별히 보살펴 주겠다”고 화답했다.

손흥민의 인성은 월드클래스급으로 오래전부터 검증돼 온 바다. 그 안에 이강인이 수렴된 격이다. 손흥민은 “그 일 이후 강인이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한 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달라”고 축구 팬들에게 부탁하자 네티즌들은 “역시 캡틴”이라며 칭찬을 쏟아냈다.

손흥민 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거 오타니 쇼헤이(29·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같은 선수도 경기장 밖의 일상이 더 큰 화제와 미담을 몰고 다닌다. '슈퍼스타'의 일거수 일투족(一擧手一投足)은 승패를 떠나 그들의 경기내용까지 지배한다. 기예 못지않게 ’월드스타‘로서 다져진 인성과 예절의 결과다.

“윗사람에게는 의무, 동등한 사람에게는 예의, 아랫사람에게는 기품이다” 겸손의 덕목에 대해 벤저민 프랑클린의 만인을 향한 설명이다. 사회적 지위에 따라 행동을 규제하는 규칙과 관습의 체계가 참 명쾌하게 들린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도덕과 예의는 기본임에 틀림없다. 예수의 가르침처럼 자신을 높이면 오히려 낮아지고, 반대로 낮추면 오히려 높아지는 기이하고도 신비한 덕목이다.

손흥민의 부친 손웅정씨가 자식을 바라보는 대견한 속마음이야 어찌 말로 다 형언할 수 있겠는가. 다만 손 선수가 “절대 월드클래스가 아니다”라고 거듭 자각을 일깨우려는 말속에 겸손함의 기품을 먼저 가르치려는 겸양의 속뜻이 선명하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평범한 자연의 진리와 덕목도 우리 가까이 있지 않는가.

이번 축구 국대 파문과는 별개로, 얼마 전부터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동방예의지국' 예찬론이 수난받고 있다. ’주자학과 중화주의 사상‘이라는 출처와 역사성을 내세워 “알고 보면 엄청 쪽팔리는 말”이라고 몰아세운다.

속국, 속박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전통'이나 '문화'라는 겉포장으로 교묘하게 전승되거나 대물림되면서 자기성찰 없는 ‘주자학의 그늘’로서 피폐라고 주장한다.

‘류큐(일본의 규슈와 대만 사이 1000km 사이에 뻗어있는 약 200개의 섬들)’은 1372년부터 중국에 조공을 바치기 시작했는데, 예의를 잘 지키는 나라라는 뜻으로 받은 호칭이 '수례지방'이다. 중국 왕조들은 전통적으로 중화사상에 순응하는 국가들에게 '예'(禮)가 포함된 칭호를 내렸던 것이다. 이처럼 복종을 잘한다는 뜻으로 '하사'한 이름인 '동방예의지국'을 조선은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얘기다.

한국에서는 이 말이 나온 지 20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자랑스런 '전통문화'라고 표현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동아시아의 오랜 역사에서 중국 문명의 영향이 절대적이었기 때문도 있다.

그러나 조선의 민족주의는 아무런 대비 없이 지내다가 굴욕과 침략을 받고서야 가해자와 침략자를 원망하는 ‘저항적 민주주의’보다 '왜 때려'하는 ‘수동적 민족주의’라고까지 한다.주자학의 그늘 못지않은 서세동점(西勢東漸) 시기에 조선이 서구 열강과 한반도 자기영토에서 겪은 대결과 패배 컴플랙스가 적잖은 영향을 준 것도 있다.

물론 민족주의에는 국가와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고 발전시켜 외국과의 경쟁에 대비하여 미래지향적인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미래를 위한 역사적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자세를 다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1C 과학기술 뿐 아니라 문화예술에 이르기까지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기에 빼앗긴 세기의 기운은 동양문화권으로 회귀 중이라는 분석이 많다. 경제력은 물론 ‘한류’가 문화민족으로서의 우월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도 그 한 예일 것이다. 19C에 놓친 버스를 다시 놓칠 순 없다.

그들은 왜 동양선수들에게 열광하는가. 유럽 축구의 명가에서, 북미 메이저 리그에서 왜 손흥민과 오타니를... 실력 못지않은 인성, 그들이 말하는 ‘매너’에 매료된 것이다. 문화민족으로서의 우월성 때문이다. 더 이상 동양문화를 관통하는 예의범절을 속박과 구속의 개념으로 닫아걸지 않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총선 정국이다. 젊음을 미천으로 당 대표까지 오른 어느 정치인의 잇단 오발탄에 “그의 부모가 궁금하다” 댓글이 뼈아프게 들린다. 가정으로부터 좋은 인성을 훈육하고 전수하려는 부모세대를 ‘꼰대’, ‘라떼(나 때는 말이야)’로 치부되는 인식도 이번 기회에 재조명되길 양념 삼아 기대해 본다.

“겸손해라,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최고의 자신감이다”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의 이 말이 참 좋다.

새용산신문 기자  kdy33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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