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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배 교수 칼럼】교육의 정서적 연대는 가정이다.
2023년 11월 30일 [새용산신문]


박상배 전 한국가스기술공사 상임감사ㆍ순천향대학교 에너지공학과 초빙교수

'밥상머리’, ‘아랫목’ 문화는 한국식 교육의 총체로 꼽을 만하다. 사회화 과정에 필요한 최소한의 예의범절이나 지켜야 할 법도, 도리, 도의에 관한 의미까지를 포괄한다는 점에서다. 교육의 시작과 끝이 가정이라고 지목하는 중요한 이유다.

한때 오바마 전 美대통령도 틈만 나면 한국의 교육을 극찬해 왔다. 학력과 교육열 등 OECD교육지표에 나타난 표면적 이유도 있겠지만, 사실은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가족문화의 이면에 관한 가치를 높이 사지 않았을까 싶다. 가장을 중심으로 현재와 과거, 미래 3代가 공존하는 한국가정의 전통적 가치가 사회구성원으로 나가는 첫걸음이나 다름없다.

한 인간으로서 제구실할 수 있는 성체가 되기까지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되는 인성과 도덕의 성장판이 곧 가정인 셈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 과정의 복지 책임을 국가에 둔 스웨덴이 복지의 최강이라면, 대가족 전통문화에서 싹틔운 이러한 한국문화의 독특한 장점은 그래서 각 가정을 우리 교육의 시종(始終)으로 내세울 만하다는 것이다.

한국인 정서와 유사한 독일 사회도 가족과 사회의 구성과 기능을 잘 정리해 놓은 말이 있다. ‘게마인샤프트’는 가족, 촌락, 교회 등 공동사회, 협동체를 일컬으며 풍습, 종교 등의 전통을 중요시한다. ‘게젤샤프트’는 근대도시, 국민, 세계 등으로서 정치 등 이익사회, 집합사회의 자의적, 근대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파생적인 선택의지에 의한 결합이라고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동서양이 따로없다.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한다’는 뜻의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유교 경전 四書중 하나인 大學출처) 역시, 일맥상통의 연관성을 잘 나타내 준다. 중심이 같은 둘 이상의 동심원 속에서 구심력의 힘을 키우며 원심분리로 발전해 가듯 말이다.

자연적이고 직접적인 결합이 인위적이고 간접적인 결합을 이루는 유기적·본원적 의지에 의한 사회결합인 이치다. 아이팟과 휴대폰, 컴퓨터 세 가지를 하나로 합친 아이폰(스마트폰) 창시자로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점이 이어져 선을 이루고, 면이 결국 입체을 이룬다’는 일상의 경험을 소개한 바 있다. 수학이 아니라 서양의 인문학적 발상인 것처럼 품행은 가정과 학교, 사회와 국가로까지 일면의 가치가 결합으로 통할 수밖에 없다.

우리 속담 중에 ‘집에서 새는 바가지 나가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어떠한 행동이 습관이 되면 그 행동은 때와 장소도 가림없이 마음먹지 않은 상태에서도 하게 된다는 뜻이다. 품성이 좋은 사람은 밖에 나가서도 좋은 품성이 드러나지만, 품성이 나쁜 사람은 어디를 가도 사람의 본바탕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나기 마련이다.

안과 밖의 행동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당연한 의미이기도 하다. 연대감이 강한 한국 전통문화에서 그 책임을 부모나 가장에게 지우는 경우가 많다. ‘자식의 잘못은 어른에게로 간다’는 흔한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요 며칠,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한국의 도덕적 가치의 발현이 온돌방 문화와 아랫목 교육에서 나온다는 발언 취지가 본말이 전도돼 곤욕을 치렀다. 때마침 청년 및 당원 트레이닝 행사인데다 그는 “한국의 온돌방 문화와 아랫목 교육을 통해 지식, 지혜, 도덕을 배우게 되는데 준석이는 도덕이 없다”고 했다. 그 책임을 두고 “그것은 준석이 잘못이 아니라 부모 잘못이 큰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결국 사과로 이어진 인 위원장은 “애가 잘못되면 이제 어른이 지적을 받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냥 한마디 한 게 부모님한테 화살이 가서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해서 사과한다”고 말했다. 사족이 문제였지만 본체의 취지는 그대로 남았는지, “그간 그의 부모님이 궁금했다”는 댓글이 민심의 눈에 더 크게 띄는 것만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일찍이 20대의 이준석 청년을 영입하여 최연소 기록을 세우며 30대 당대표를 만들어 냈다. 그 깜짝쇼에는 성공했지만 그것이 이준석의 거의 전부다. 그가 높은 자리에 오른 이후에는 당 안팎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이준석의 난(亂)이 거듭될 때마다 당 안팎에서는 단말마적인 비명이 끊이지 않다.

당으로서는 대박을 치려다 쪽박을 차는 정치 코미디로 이어진 것이다. 그는 유창한 언변으로 TV 토크쇼에서는 귀한 논객으로 환영받고 있으나 분노 조절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그 공격성은 무차별적이고 거세고 끝이 없다. 무자비한 컴퓨터게임이나 UFC가 연상된다는 사람도 있다. 그가 즐긴다는 컴퓨터게임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순발력은 뛰어나다.

우리사회가 언제 부터인가 옳고 그른 소리를 구분조차 못한다. 양식있는 쓴소리에 참고 듣지 못하는 병리현상에 깊이 빠진 듯 하다. 도덕이 바로서야 정치가 바로선다.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그 일파들이 ‘암껏’발언과 무의식적인 동조행위를 포괄한 막말파문은 여야 구분없이 망라한다. 아름다운 미풍양속과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조차도 유교적 지배이데올로기로 이념시하고 ‘꼰대’로 몰아부친다,

한때 사회변혁의 중심에 섰던 ‘386세대’도 어느덧 ‘686세대’의 부모세대가 됐다. 설령 자손이 저질렀을 과실이라도, 그 몫은 온전히 부모에게 돌아온다는 우리의 사회적 통념과 책임의식에는 여전히 변함없다.

부모세대가 됐어도 성장판이 멈춰선 소설 ‘양철북’에 나오는 소년처럼 자신이 속한 위기 속에서도 언제까지 양철북만 두드릴 수는 없지 않은가. 과거의 성찰을 통해 현재를 관찰하고 닥쳐올 미래를 위한 통찰의 시간을 차분이 맞이할 때다.

새용산신문 기자  kdy33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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