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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배 칼럼】고갈된 ‘청년정치’의 생기
2023년 11월 06일 [새용산신문]


박상매  전 순천향대학교  교수

'재승박덕(才勝薄德)'이라고나 할까,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우리나라 ‘특별귀화 1호’ 인요한(64, 존 린튼) 연세대 의대 교수를 면전에 두고 저지른 무례(無禮)는 지나치리만치 교활했다.

120여년 4대조에 걸쳐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며 한국 국적을 얻고,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 인 위원장이다. 굳이 영어로 응대한 점은 영원한 이방인 취급으로 능멸하려 작정하지 않고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정치적 정당성을 떠나 참 교만한 인물로 세간에 재차 각인될 수밖에 없는 속내다. 착하고 올바른 정치를 하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인성 자체에 심히 의심 가는 눈길이 더욱 강해졌다. 겉으론 ‘청년정치’를 외치며 시대에 동떨어진 그의 그릇된 인식과 예의범절은 같은 DNA을 가진 한국인의 넓은 심성을 한없이 비좁게 만들었다.

‘혁신위원장’이란 엄연한 타이틀을 어설픈 미국식 호칭으로 돌려세우는가 하면, 대통령을 지칭한 듯 ‘진짜 환자(The real patient)’는 서울에 있으니 엉뚱한 사람에게 오진(誤診) 말라는 것이다.

마이너스3선(-3, 낙선)인 자신의 출마 이력과 달리, ‘뭣 모를’ 의사쯤으로 빗대 인 위원장을 ‘정치하수’로 여긴 것은 아닌지 의심들 정도다. 인 위원장도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렇게 계속 ‘너는 외국인’이라고 취급하니 힘이 들었고 섭섭했다”고 토로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진짜 환자(The real patient)’라고 겨냥하는가 하면, 11월 6일에는 혁신위의 ‘대사면’(징계 취소)과 인 위원장의 부산 토크콘서트 방문 등의 제스처를 ‘억지 봉합 쇼’라고 비판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1월 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12월 말까지 당에 변화가 없으면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독자 행보의 구체적 시기를 다음 달 말로 못 박기까지 했다.

그럼 에도 인 위원장은 여야 진영과 이념의 벽을 허물고, 국민통합의 길을 줄곧 외쳐왔다. 더구나 이전의 삶도 그렇듯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힘의 원천은 ‘2030’을 입에 달고 행세해온 이 전 대표보다 도덕적 명분 면에서 훨씬 우월하다.

역동적이고 실천적인 삶도 돋보였던 터다. ‘호남 출신’ ‘특별 귀화 1호’ ‘비(非)정치인’ 등의 다양한 타이틀을 가진 만큼 ‘쇄신’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할 수 있는 인사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던 것도 이 때문이다.

여의도 정치의 양극화·저질화에 대한 국민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을 고려하면, 통합과 희생을 화두로 내건 인 위원장의 초반 행보는 정치개혁 차원에서도 호의적이다. 그는 “통합을 추진하려고 한다”며, “와이프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환골탈태를 주문했다. 또한 “국민의힘에 있는 많은 사람도 내려와야 된다. 희생 없이는 변화가 없다”고 했다. 많은 국민의 요구이자 듣고 싶던 생각이다.

국민은 여야 모두에 대개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 위원장은 영남 스타 의원 수도권 출마, 이준석 등 징계 취소, 핼러윈 1주기 추모식 참석, 5·18 국립묘지 참배 등의 짧은 기간 숨가픈 이슈를 던졌다. 3선 이상 동일 지역구 출마 금지, 불체포특권 포기, 비례대표 연령 하향 등도 거론됐다. 이념적·지역적 극단 정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어서 다수 국민의 관심을 받는 데 일단은 성공작이다.

특정 정파에 속하지 않은 의료인이 집권 여당의 쇄신 작업을 이끌게 된 것에 적지 않은 기대가 현실로 이어질지 아직은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김기현 대표와 주호영 전 원내대표 등 중진 실세들은 물론 이른바 ‘윤핵관’의 불출마 또는 수도권 출마론에도 불을 지폈다. 한국인 보다 한국적이면서, 때론 냉철하고도 보다 객관적 입장에서 우리 정치사회의 내부 모순과 문제점을 비판하며 대안 제시로 관심의 눈길을 끌어 모으고 있다.

반면 이준석 전 대표만큼 메타포 (metaphor)를 즐겨쓰는 정치인도 없다. 지난 대선 당시 '비단주머니'나 '삼성가노' 같은 비유는 모두 소설 삼국지에서 차용한 표현들이다. 그가 인 위원장의 국민통합과 당내혁신의 손길을 냉대하듯 박절히 뿌리친 것을 보며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다시 떠올랐다. 자신의 당원권 정지로 치러진 금년 3월 전당대회 당시 국민의힘 상황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빗댔던 적이 많다.

소설에서, 주인공 한병태는 공무원인 아버지의 좌천으로 열두 살에 서울에서 읍으로 이사 가면서 볼품없는 시골 학교로 전학 간다. 시골 학교엔 민주주의가 없고, 급장 엄석대의 전횡만 있을 뿐이다. 병태는 담임선생의 전권을 부여받은 무소불위 엄석대에게 반기를 들며 외로운 싸움을 시작하지만 결국 굴복하고, 그의 밑에서 ‘평화’를 찾는다. 석대의 편애로 학급 내에서의 대우도 달라진다.

6학년이 되면서 새로 맞은 담임은 석대의 전횡을 바로 잡는다. 석대가 담임의 회초리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본 아이들은 석대의 만행을 하나씩 실토하기 시작한다. 분노하며 뛰쳐나간 석대는 하교하는 아이들을 기다려 응징하지만 “다섯 명이 한 놈한테 하루 종일 끌려 다녀? 병신 같은 자식들”이라는 담임의 말에 고무된 아이들이 단결함으로써 ‘석대 시대’는 종언을 고한다.

새 담임 선생님의 부임 이후 석대의 비행이 속속들이 드러나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석대는 학교에서 도망친다. 작가는 석대의 몰락을 통해 절대 권력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병태와 다른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에 순응하는 소시민적 근성을 지적했다.

이 전 대표는 이 소설을 10살 때 읽었던 애독서라며 정치에 종종 비유했다. 3월 전대에서 ‘석대 왕국’을 무너뜨려달라는 자신의 외침이 실패로 끝났지만, 비로소 ‘혁신위원장’이란 이름의 새 담임 선생님을 맞이했다. 지금에야말로 엄석태와 맞설 때지만 맞서 싸우자고 할 때는 언제고 전학할 생각에만 골몰하고 있지는 않은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모두 교단 위에 손 들고 꿇어앉아 다시 한번 스스로를 반성하도록.”

자칫 헛 디디면 만회가 힘든게 정치권의 시대정신과 명분이다. 이 전 대표가 꿈꾸는 궁극의 세상은 무엇인지 김 선생(인 위원장)의 이 일갈을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새용산신문 기자  kdy33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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