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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칼럼】세종대왕의 정치철학을 본 받으라!
2023년 10월 05일 [새용산신문]


김준태 본지 본부장(칼럼리스트, 이봉창의사선양회 본부장)

우리나라 역사에서 세종대왕 만큼 존경 받는이가 어디 또 있을까? 우리나라의 영토를 두만강과 압록강 까지 크게 넓힌 공로를 인정 받아 대왕이란 칭오를 붙히게 된 것이다.

여주 영릉에는 세종대왕의 묘지가 잘 조성돼 있다. 많은 위업 중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은 단연 한글창제(훈민정음)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ㆍ문화ㆍ 과학ㆍ경제 등 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단지 학문을 좋아하는 군주라서 이같은 위업을 남긴것은 아니다.

15세기 당시 우리나라의 과학 발전상은 조선의 영역을 벗어나서 세계적인 수준의 평가를 받고 있었다. 이는 세종의 야망과 문화적인 공로,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의 탁월한 능력과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의 업적 중에는 세계 최초의 '측우기(강우량 측정기)' 발명과 시보장치를 단 시계 '자격루'가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앙부일구(仰釜日舊) 즉 오래된 "해시계"가 있다.

이것은 세종이 추구한 바를 예견할 수 있는 값진 발명품인 것이다. 해시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로 원시시대부터 나무그림자를 보고 시간을 측정했다.

개발 과정에서 중국과 다른 시간을 사용 한다는걸 알게 되었고, 조선 한양의 위도를 찾게 된것이다.

또한 측우기의 발명은 농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농법만 하더라도 경험이 많은 농부 에게 자문을 구해서 "농사직설"을 편찬토록 하였다.

의학(약)도 마찬가지다. 중국에 의학서가 있었다고 해도 조선에서 약을 구할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여기고 "향약집서방"을 편찬케 하였다.

세계속에서 조선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한 세종대왕의 예지력이 놀랍기만 하다. 세종의 통치가 끝난 후 조선은 큰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후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조선은 오랑케들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로 말미암아 조선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고, 비운의 근대사로 이어졌다.

또한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은 생명존중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노인 경로사상과 아이들을 돌보며 사랑하라 했고, 장애인들에게도 복지정책을 펼친것을 볼 수 있다.

세종대왕은 재위 32년 동안 오로지 국민들의 행복과 복리 증진에 매진했다. 그 후 우리 나라는 슬기와 끈기로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세계속에 우뚝서는 부국강병의 역사를 이뤘다.

그 이면에는 세종대왕의 예리한 통찰력과 지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사료된다.우리 정치인들도 세종대왕의 나라사랑, 애민정신(愛民精神)과 예리한 통찰력을 본 받아 국민들의 행복증진에 매진하기 바란다.

새용산신문 기자  kdy33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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