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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배 칼럼】보무당당히 돌아온 국군의날 시가행진
2023년 09월 29일 [새용산신문]


박상배  전 한국가스기술공사  상임감사

동서고금을 돌아봐도, 금세기 최대 ‘정치이벤트’로 ‘시카고 퍼레이드’만한 것은 지금껏 없다. 1951년 한국전쟁의 발화점이 최고조에 다다를 즈음, 당시 극동군 사령관으로 ‘태평양전쟁의 영웅’칭호를 부여받던 맥아더 장군이 돌연 유엔 극동군 총사령관 자리에서 해촉돼 고향을 향해 돌아왔다.

갤럽조사에 의하면 그 당시 미국 국민의 70~80% 이상이 그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고, “맥아더의 해임은 남북전쟁 이후 가장 큰 정치사건”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를 반영하듯 의회도 해촉관련 청문회를 열어 트루먼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목청을 높였다. 대통령 고유의 인사권한과 판단이 이처럼 美국민의 대대적인 반발을 샀던 적도 역사에 흔치 않은 일로 기록됐다.

급기야 맥아더 장군의 파면은 시카고 퍼레이드(시가행진)를 통해 금의환향의 모양새를 갖추게 됐고, 만국기와 오색꽃가루가 날리는 도로 연변에 나선 환영인파는 가히 장광의 물결로 이어졌다.

그 유명한 ‘귀거래사의 대표적 명언’,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는 대목을 남기고 조용히 ‘역사 속 인물’로 물러나는 순간이었다. 호사가들은 정치와 정적(政敵)관리 측면에서 ‘시카고 퍼레이드’가 또 한번 역사를 바꿔놓은 대사건으로 평가했다.

1950년 겨울 한국전쟁(6.25)에 중공군이 개입함으로써 전세가 역전되면서 트루먼과 맥아더의 갈등은 깊어졌고, 그의 파면에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 맥아더는 확전을 요구한 반면, 트루먼은 휴전협상을 원했다. 결국 그의 파면을 끝으로 한국전도 1953년7월 휴전협정에 들어갔다.

단 한 건의 ‘시카고 퍼레이드’가 이처럼 미국역사를 바꿔놓은 직접적인 동인(動因)은 무엇이었을까. 단연 ‘정적(政敵)관리술’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 트루먼의 뒤를 이어 아이젠하워가 재선을 일궈냈다. 그 역시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이다.

맥아더와 같은 군문 출신 아이크(아이젠하워의 애칭)는 그에 대한 콤플렉스가 매우 강했고, 1952년 대선에 첫 출마할 때는 한국전쟁 중이었다. 트루먼과 아이크는 반공·반소 강경노선을 펴며 공존의 관계였으나, 맥아더 만큼은 잠재적 경쟁상대로서 정치적으론 공적(共敵) 취급을 했다.

만약 1948년 대선에서 맥아더가 후보로 나섰다면 아이크 역시 떼밀려 대선에 출마했을 뻔했고, 트루먼은 상대적으로 설 땅이 없었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맥아더 해임은 당시 美 대선구도의 역학관계로 미루어 시쳇말로 ‘정적 죽이기’나 다름없던 것도 이 때문이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격으로 거꾸로 화려한 퇴임행사를 치러 줬다. 정치권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영원한 노병’으로 美국민의 뇌리에 대못을 박아 두려고 만든 속칭, ‘꼼수정치’가 바로 ‘시카고 퍼레이드’였다. 요즘 말하면 ‘이미지 정치’의 원조쯤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노병’의 마지막 길에 범국가적인 명분과 범세계적인 명예를 두루 안겨주었다. 맥아더도 정적들에 의해 마련된 이벤트효과의 궁극적 노림수가 무엇인지 뻔히 알지만, 모른 채 별 반응없이 외면해 주었다. 선진정치를 한다면 이 정도 품격은 돼야 하지 않을까.

건군 75주년이자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은 올해 국군의 날 행사와 시가행진이 26일 숭례문~광화문 구간에서 있었다. 북한군의 주·야간 각종 기념 열병식이 외려 국민의 눈에 익숙해지는 동안, 보무당당한 우리 군의 시가행진을 마침내 직접 보게 된 것도 어언 10년 만이다.

6·25전쟁 중에 국군이 육·해·공군 합동작전에 의해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육·해·공군 창설이 완료돼 3군 체제의 국군이 완성된 날을 국군의 날로 정해 1956년부터 기념해오고 있다. 대통령령에는 ‘국군의 위용 및 전투력을 국내외에 과시하고 국군 장병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행사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남북 대화 분위기와 코로나19 사태 등을 이유로 국군의날 행사는 이전과 달리 간소하게 치렀다. 그러나 최근 북한은 7차 핵실험 준비, 탄도미사일과 정찰위성 시험 발사 등 도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지난 4월 한·미 정상의 ‘워싱턴 선언’ 채택 이후 비난 수위도 높이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특히 최근 김정은의 북·러군사협력 등을 계기로 강한 국방력이 없으면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확인했다.

이런 상황에서 건군 75주년을 맞은 올해 국방부가 국민과 함께하는 국군의날 기념행사를 성대하게 치른 일은 반가운 일이다. 무엇보다 5주년 단위로 꺾어지는 국군의날마다 열렸던 시가행진이 2013년 이후 10년 만에 부활해 특히 눈에 띈다.

시가행진은 근자에 들어 방위산업(방산)의 비약적인 발전과 국군의 변천사를 국민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국군장병들을 눈앞에서 응원하는 기회란 점에서 깊은 의미가 있다.

물론 요즘처럼 정보통신이 발달한 시대에 수천 명의 병력이 오와 열을 맞춰 행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시각도 있고, 시가행진 준비를 위해 무더위 속에서 훈련하면 오히려 장병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는 주장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국군의날은 말 그대로 국군이 주인공인 날이다. 시가행진은 주인공인 국군이 일사불란함 속에 절도와 패기, 늠름함과 씩씩함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다.

국민과 함께하는 시가행진을 한다면 행사 준비로 수고한 장병들도 국민의 열렬한 축하와 뜨거운 응원을 받으며 군인으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적에게는 두려움을, 국민에겐 군에 대한 신뢰를, 국군에겐 사기를 높이는 의미 있는 자리다.

역사적 배경, 관련 법령, 국내외 안보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이번 국군의날 행사는 확고한 국방 태세를 다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지하는 국민이 든든함을 느끼도록 해줘야 한다.

국민과 국군이 함께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행사를 한눈에 보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도 반가워하실 것 같다.

이날 만큼은 국군이 국민 속에서 국민의 군대로 완성되는 현장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뿐 아니라 세계 6위권 국방력(USNWR 평가)까지 갖춘 나라다. 올해 국군의날은 세계적 강군으로 성장하도록 후원한 국민과 함께 발맞춰 걷는 축제의 장으로 그 뜻이 면면세세 이어지길 바란다.

새용산신문 기자  kdy33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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