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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배 칼럼】햇볕정책에 기댄 안보 자화자찬
2023년 09월 24일 [새용산신문]



박상배  전 한국가스기술공사  상임감사

‘가르고 또 가르고’, 이토록 나라를 둘로 갈라놓는데 집념을 가진 대통령은 보질 못했다. 이 집단 최면의 상좌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현직 때든, 전직 때든 국민의 기대치에 벗어난 행보를 거듭하는 배경이 뭘까. 궁금증을 더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퇴임 후 첫 서울행에 나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역시나 대정부 비판의 전면에 나선 모양새였다.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 자리를 빌려 윤석열 정부에 공개적으로 날을 세우고, 단식 농성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당 결집을 유도하면서다. 국회 대정부 질문에 나선 당 대표도 이 정도 비장함을 띠진 못했을 것 같다.

자리를 물러난 지 1년 반여. 전직 대통령으로 남은 아쉬움도 벗어버릴 때도 됐겠건만 문 전 대통령의 욕망은 현역 때 못지않다.

스스로 ‘잊어달라’는 낙향 취지가 멋쩍지 않을까도 싶다. 시시콜콜 구석구석까지 현실정치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 그간의 행보를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간혹 불안감과 초조함 때문으로 비쳐질 때도 있다. 단식중단을 권유하는 위로 차원의 당 대표 방문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다.

9.19선언 중 강경발언 뒤이어 “길게 싸워나가야 하고 국면도 달라지기도 해서 이제는 기운을 차려 다시 다른 모습으로 싸우는 게 필요한 시기”라며, 일심동체의 마음을 나타낸 데는 지금보다 더 험난한 정국경색이 초래될 것만 같아 왠지 석연치 않다.

그렇지 않아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때부터 지금껏 진영 정치를 잠시라도 벗어나 본적이 없다는 지적이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국내 정치상황을 가히 내전 수준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역시 그 연장선이다.

안정화되지 못한 정국혼란은 국내외 상황과 겹쳐 정치경제 외교안보 사회안정 등 전 분야에 걸쳐 심상찮은 신호로 작용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문 전 대통령 입장에서 이날 공개된 기념행사와 같은 자리는 전직 신분에 자주 있는 기회는 아니다.

이런 자리를 빌려 때마침 제기된 자신의 집권 당시 재정적자와 통일 외교 안보정책 기조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인 반론 제기를 하고 성과도 강조할 반전의 기회로 삼으려는 욕심은 이해못할 바 아니다.

그런 면에서 연설 시간의 3할을 할애했다. 노무현·문재인 진보 정부가 남북관계를 개선했을 때 경제상황이 나아졌다는 주장을 펼치며 나온 발언이란 점도 일응 납득할 측면이 있다.

최근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지표 통계 조작 의혹을 대대적으로 감사하는 상황에 대한 반발로 읽힌다. 방어권 차원의 소명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민주사회의 발전과 건강성을 나타낼 척도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문제는 지금의 변화된 남북관계를 포함한 외교·안보 분야의 정책기조를 전혀 반영치 못한 기계적인 비판과 인식에 있다는 점이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나치게 진영외교에 치우쳐 균형을 잃게 되면 안보와 경제에서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잃을 수도 있다”고 했다.

또 “북한의 계속된 도발로 군사합의가 흔들리는데 급기야 정부·여당에서 폐기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남북관계가 다시 파탄을 맞는 지금 군사합의 폐기는 무책임한 일”이라고 쏘아붙였다.

지난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정상회담을 통해 채택한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서다. 남북은 2018년 평양정상회담에서 긴장완화를 위한 9·19 군사 분야 합의서를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로 채택했다.

이를 철저히 준수하고 성실히 이행하며,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적극 취해나가기로 했다.

이 같은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위장평화전술’ 일부가 그 자신의 재임 중 극명히 드러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방적인 남북경협연락소 폭파를 물론이고, 판문점남북정상회담-싱가폴 북미정상회담 그리고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불발 이후 수차례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안보불안 해소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둘러싼 허구적 대화 노력이 얼마나 허무한지 그간 ‘가짜평화론’에 휘둘린 바 적지 않다. 따져보면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억지다.

특히,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불발 이후 북한이 보인 태도 돌변은 친히 보고 듣고 겪은 상황이다. 심지어 북한으로부터 ‘삶은 소대가리’ 소리를 듣고, 외신으로부터 ‘김정은 대변인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듣지 않았나.

우리의 국격은 어땠겠는가. 남북협력을 통한 평화 경제를 건설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 문 대통령의 경축사를 문제 삼은 것이다. 극히 호의적인 제스처 마저 뿌리친 북측이다.

문 전 대통령이 북측으로부터 이런 취급을 당하고도, 현 정부가 미국·일본과 3국 협력에 무게를 둔 기조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국민이 듣기에도 엄청난 넌센스다. 문 대통령을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이라거나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이라며 당시 저급한 표현을 사용하며 막말을 쏟아낸 조평통 담화가 연상된다.

이른바 전직 대통령으로서 더욱 이해 못할 부분은 보수·진보진영 간 습관성 편 가르기 증상이 돋진 것이다. 연설 말미에 현 정부를 넘어 보수진영을 향해 노골적으로 날을 세운 것이다.

“9·19 평양공동선언의 교훈을 말하면서 역대 정부의 안보와 경제도 살펴봤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진 진보정부에서 안보도 경제도 성적이 월등히 좋았다”며 “‘안보는 보수정부가 잘한다’ ‘경제는 보수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문 전 대통령 집권 당시의 여러 문제를 진보진영 전체의 문제로 디딤돌 삼아 결집을 유도하려는 계산된 행보로 비쳤다.

더욱이 집권 당시 자신이 드라이브를 건 남북관계 오류를 햇볕정책(김대중 정부)까지 끌어들여 판을 키우려는 얄팍한 총선전략과 맞물려 있지 않냐는 눈총까지 받게 됐다.

“전직대통령은 모든 것을 역사에 맡기고 침묵해야 하거늘 북핵을 방조하여 국민을 핵 노예로 만들고 재임 중 400조 빚을 내어 퍼주기 복지로 나라재정을 파탄시켜 부채 1000조 시대를 만든 사람이 아직도 무슨 미련이 남아 갈등의 중심에 서 있나?”(홍준표 대구시장)

"국가의 얼굴이셨던 분이 정쟁에 자꾸 끌려들어 오면 본인 가치가 떨어지는 것” “나라, 국민, 본인을 위해서 외국에 나가계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발언을 안 하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국민의힘 하태경 의원)

이래 저래 ‘직전 대통령’으로서 여느 전직 대통령 같지 않은 유별난 행보가 국민의 눈에도 크게 걸린다. 전·후임 정부 간의 차별화, 격하는 늘상 있는 일이다. ‘내 등을 밟고 가라’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전두환 대통령의 도량이 왜 이리 커 보일까.

버려진 캐비넷까지 뒤져 박근혜 대통령과 탄핵 정부를 '적폐청산의 제물' 삼아 천정부지(天井不知) 인기몰이를 했던 정부로서 비명과 아우성이 지나친 것은 아닌지, 다소의 불편함도 답답함도 늦긴 하지만 훗날 역사의 영역으로 넘기길 권한다.

새용산신문 기자  kdy33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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