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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배 칼럼】 아라비안의 에너지외교 상술화
2023년 09월 14일 [새용산신문]

 


박상배  전 한국가스기술공사  상임감사

에너지 시장이 격랑의 연속이다. 국제질서가 안보와 경제, 기술패권 중심의 ‘신 냉전구도’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유가변동에도 받는 충격이 적지 않다. 국제유가 시장은 수요공급의 균형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여파도 매우 크다.

유가는 물가를 끌어올리고 내리는데 직접 요인이다. 유가가 오르면 각국 중앙은행이 공격적 금리 인상으로 간신히 고삐를 잡은 물가가 다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상을 촉발하고, 세계경제 활력을 꺾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우리라고 이런 여파에 예외일 수 없다.

최근 서부텍사스유(WTI)를 비롯한 국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다. 미국 월가 일각에선 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내놓고 있다. 이미 예고된 움직임이지만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 때문이다. 사우디는 연말까지 하루 100만 배럴 감산을 이어가기로 했고, 러시아는 하루 30만 배럴 수출 감축을 유지하기로 했다.

사우디는 네옴시티 등 대규모 건설을 위해 80달러 이상의 고유가 유지를 희망하고,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도 전비 충당을 위해 고유가에 목을 매는 등 뒷배가 맞았다. 배럴당 100달러가 넘을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유가변동은 수요공급의 문제와 산유국 간 카르텔 등 각종 독점적 지위가 공공연하게 도사리고 있다.

그럼에도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 가스와 원자력이 석유와 석탄을 대체하고, 최근 들어서는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기대가 커져 왔다. 특히,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 석유는 에너지 시장의 ‘왕좌’를 전기에 넘겨주고 석유화학 원료의 역할에 주력할 것이란 전망도 컸다.

실제 정유사 경영실적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지난해 국제유가 상승 등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정유업계가 올해는 연속 '울상'이다. 정제마진이 하락하면서다. 그나마 석유화학 사업 비중이 높은 기업은 상황이 나은 편인데, 정유사들은 신규사업에 눈을 돌리며 석유화학 사업 비중 확대에 나서고 있다.

훨씬 앞서 90년대 이후 확연히 달라진 추세가 시작되었다. 석유와 석탄의 소비 비중은 낮아진 반면, 천연가스와 신재생에너지의 소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추세가 일시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에너지 소비구조가 보다 근본적인 변혁을 겪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미 대선 과정에서 “집권하면 사우디를 국제 왕따로 만들겠다. 사우디에 대한 무기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호기롭게 외친 것도 이런 자신감에서다. 자신의 지지 기반인 진보 세력이 인권 탄압에 민감한 데다 이란과의 핵 협상 복원 등을 이뤄내면 사우디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는 현실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란과의 핵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터졌다. 이로 인해 지난해 내내 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 9%대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그는 자존심을 굽히고 지난해 7월 사우디를 찾았다.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직접 원유 증산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사우디가 이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같은 해 10월 감산을 발표했고 지금처럼 이 같은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 못지않게 인권을 중시하는 캐나다 트뤼도 총리도 고물가가 이어지고 최대 수출국인 사우디 시장이 사라지자 백기를 들었다. 특히 이란과의 외교 정상화가 중국 주재(중재)로 이뤄진 것은 바이든 행정부에 큰 충격을 안겼다. 사우디는 올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비밀 회담을 열었다.

이를 통해 2016년 사우디가 자국 내 시아파 성직자를 사형에 처한 후 7년간 단절됐던 두 나라의 외교 관계가 복원됐다. 5월에는 역시 시아파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장기 집권 중인 시리아와도 다시 손을 잡았다. 사우디는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후 줄곧 수니파 반군을 지원하며 외교 관계를 끊었지만 12년 만에 관계가 회복됐다.

사우디의 중국 밀착 행보는 중국봉쇄 전략외교를 구사해온 미국의 불안감을 더욱 키웠다. 중동 내 중국의 세력 확장을 견제해야 하는 데다 내년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외교 정상화 주선을 주요 치적으로 내세우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때 셰일혁명으로 "SaudiAmerica" 혹은 “Texarabia”로 부를 만큼 석유의 가채매장량과 생산량이 증가하여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 필적할 만한 석유부국으로 부상을 기대했다.

중동권의 이같은 대미외교 변화 움직임에는 셰일혁명에 지나친 과신이 원인이 없지 않다. 이에 기인한 아프칸 미군 조기철수 등 중동전략 이 지역에서의 신뢰추락을 가져왔고, 이런 변화를 읽지 못한 채 이전의 영향력에 도취한 때문 아니냐는 자각도 있다.

무역과 상술에 이골이 난 페르시안, 고대 신라와도 교역했던 아라비아인들을 과소평가하진 않는지, 서둘러 그들 문화를 되짚어 볼 일이다.

새용산신문 기자  kdy33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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