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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배 칼럼】‘역사의 강’, 가볍게 뛰어들 일인가
2023년 08월 29일 [새용산신문]


박상배 전 한국가스기술공사 상임감사

역사의 정의는 다양하다. 점(點)들이 모여 선(線)이 되고, 선이 모여 면(面)이 되듯 말이다.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모여 1년, 10년, 100년이 되는 이치와 같다.

그 시공의 흐름 속에서 축적된 삶의 기록과 사건들이 공사(公私)적 영역으로 갈려 개인의 일생이 되고 한 나라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역사의 강’은 이처럼 면면히, 그리도 도도히 흐른다. 현 정부의 역사 인식 또한 이 같은 통시적인 시각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인식된다.

건국 시점을 두고도 1919년(임시정부)이냐 1948년(대한민국)이냐를 다퉈왔다. 이 역시 일본강점기부터 정부 수립까지의 시간을 하나의 과정으로 뛰어넘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논쟁은 마치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우(愚)나 다름없다. 배에서 칼을 물속에 떨어뜨리고 뱃전에 빠뜨린 자리를 새겨두고 배가 정박한 뒤에 칼을 찾으려는 어리석음 그 자체다.

나무는 보고 숲을 볼 줄 모르는 옹졸하고 답답한 근시안적 사고(思考)가 국민적 논란만을 더욱 부추겨 왔던 것이 현실이다.

‘역사의 진보’ 앞에 벽돌 한 장 엄숙히 쌓을 생각조차 못하고 이분법적 진영논리에 함몰된 채 대립과 대치로 소모전만을 치러왔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기념관 사업이 본격 추진될 모양이다. 이제 겨우 한 걸음 떼었다. 보다 큰 성과는 국민적 합의와 공감대를 넓혔다는 점이다.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통해 친일 논란을 증폭시키며 갈라섰던 오랜 질곡에서 겨우 벗어난 듯하다.

하지만 이번엔 또다시 독립운동에 공적을 쌓은 인물들의 기념물 설치와 퇴거를 놓고 논란이다. 이념과 정체성 논쟁이 재점화된 모습이다.

시점도 신냉전 구도가 빠르게 형성돼가는 주변국 분위기라서 미동 하나까지 여느 때와 다르게 예사롭지 않다.

북핵·미사일의 현실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안보동맹이 한층 강화되고 있고, 이에 못지않게 북중러의 반작용도 안보 경제까지 확대되는 등 가늠 안 될 각도에서 표면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논란의 한복판에 선 정율성(1914~1976년)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그 행적부터가 한국전쟁(6.25)의 원흉 중 하나지 않는가. 중국 인민이 극찬하는 예술성, 중국인 관광호객 상품성 등을 역사공원 조성작업 이유라고 한다.

89그 부박한 역사 인식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념 논쟁 자체가 알량하다. 이민족을 끌어들여 동족상잔의 최일선에 선 만행은 그 어떤 치적에도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결국 한국전쟁 후 중국으로 귀화해 영원한 ‘한민족의 이단아’로 생을 마감한 인물이지 안는가.

그럼에도 안타까움은 육사교정에 들어선 홍범도(1868~1943년) 장군의 흉상 철거 논란에 있다. 청산리 전투와 함께 항일 무장투쟁 승리의 대업을 이끈 그의 소련공산당 가입 전력이 시비다.

공산이데올로기 여부로 사관생도의 요람에 거치시킬 수 없다는게 철거 이유다. 정을성과는 전혀 별개이면서도 별개가 아닌 듯 엮여있다.

사실 정체성 시비는 국군의 주적개념을 혼미상태로 몰아넣은 문제인 정부 대북관(對北觀)이 논란의 시발점이자 원죄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국방부가 이를 바로 세우겠다는 취지는 일면 납득된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앞서 지난 25일, 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 등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 이외 장소로 이전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확인했다.

논란의 핵심에 일말의 책임감을 가져야 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천연덕스럽게 포문을 열었다. “국군의 뿌리가 독립군과 광복군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이냐”고 잔뜩 벼르듯 반발했다.

“국권을 잃고 풍찬노숙했던 항일무장독립운동 영웅의 흉상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이리저리 떠돌아야겠느냐”는 것도 지당한 말씀이다.

우당 이회영 선생의 친손 이종찬 광복회장도 “반역사적 결정”으로 규정한 뒤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면 자리에서 퇴진하는 것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라며 이 장관 사퇴를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항일 독립전쟁의 영웅까지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씌워 퇴출하려는 것은 너무 오버”(홍준표 대구시장), “윤석열 정권의 이념 과잉이 도를 넘고 있다”(유승민 전 의원)는 비판이 나왔다.

구한말 개화기 버스를 놓치고 주변 열강의 틈새에서 길을 잃은 그 아픔의 역사. 그 소용돌이 속에서 명자, 아끼코, 소냐로 개명해야 했고 거스를 수 없는 시류에 편승해야 했던 이 땅의 수많은 양민들 입장의 변도 따로 있다. 다만 당시에 처한 숙명으로 알고 말을 잇지 못할 뿐이다.

‘한국정치의 풍운아’ JP(김종필 전 총리)는 자신과 관련한 숱한 영욕(榮辱)의 세월과 역사에 관해 이렇게 항변했다. “어제는 어제의 논리가 있고 오늘은 오늘의 논리가 있다. 어제 부는 바람과 오늘 부는 바람이 어찌 같을 수 있겠냐”고...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1920년)를 이끈 후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지만 광복 전 소련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그도 하고 싶은 말이 어찌 없겠나. 역사의 강은 오늘도 흐른다. 현재, 그리고 찰라의 순간만 보고 뛰어들 일만은 아니다.

새용산신문 기자  kdy33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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