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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배 칼럼】인고의 미학과 매미의 교훈
2023년 08월 26일 [새용산신문]


한국가스기술공사 감사 (전)

찬 바람이 불기도 전에 도심이 고요하다. 잦아든 매미울음과 함께 작렬하던 무더위도 한발 물러선 때문일까. 우렁찬 합주 때와는 다르게 계절의 변화에 앞질러 떠날 줄을 아는 매미. 그 생애야말로 영속만을 쫓는 우리에게 울림만큼이나 전하는 교훈이 깊다.

지난여름 우리 사회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계절은 바뀌었어도 후유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많은 희생자를 낸 청주오송 지하차도 침수사건이나, 새만금 세계잼버리 대회의 준비 부실로 인한 국민적 우려와 아픔은 어느 해보다 컸다.

초임교사의 극단선택으로 촉발된 교권확립과 공교육 정상화 방안도 갑론을박과 네 탓 공방은 갈수록 거세다. 역동성이 강한 우리 사회가 겪는 갈등과 분열을 해소할 한가지 방안을 묻는다면 무얼까. 일찍이 ‘무소유’ 예찬론자인 법정 스님의 어록을 생각해 봤다.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부터 떠 오른다.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버려야 지켜야 할 것도 보이는 법이다. 가진 것이 없으면 불편은 하지만, 가진 것이 많으면 근심도 많다.

두 손에 움켜쥔 것을 놓아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다는 이치를 매미의 교훈을 통해 돌아보자. 무더위가 끝나고 찬 바람이 불기 전에 스스로 사라지는 매미에게는 이처럼 ‘비움의 미학’, 그리고 때를 거스리지 않고 미련없이 떠날 때는 떠날 줄 아는 자기관리의 심오한 메시지가 있다.

더구나 매미는 자기가 노력하지 않은 결과물을 욕심내지도 않는다. 농부가 힘들여 가꾼 곡식을 참새처럼 염치없이 갈취하는 법이 없다.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이슬과 수액만 먹으면서도 본분과 분수를 지키며 살아간다.

좀 혹독한 면도 없지 않다. 유학에서는 이런 매미의 특성을 진정한 선비가 배워야 할 정신이자 군자가 가야 할 길이라고 가르친다. 또한, 집조차 없는 곤충은 매미가 유일하다.

청빈을 상징하듯 매미에게서 배우는 절제는 단지 재물이나 물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리더의 위치에서 주어진 온갖 권한과 권리까지도 포함한다. 익선관(翼蟬冠) 쓰기를 사양한 하성군(선조)이 조선 14대 왕에 오르게 된 이야기는 유명하다.

명종이 어느 날 이복형 덕흥군의 세 아들을 궁궐로 불렀다. 그리고 왕만이 쓸 수 있는 익선관을 내어놓고 한 번씩 써보라고 했으나 선조의 하원군과 하릉군 두 형은 별말 없이 써보았다.

하지만 셋째인 선조는 왕만이 쓸 수 있는 익선관을 착용할 수 없다며 사양한 것이 후사로 지목된 배경이다. 우리는 종종 사극에서 ‘익선관’ 모자를 쓴 왕과 관리들을 본다.

원류관이나 면류관과 달리 익선관은 평상시 시무복으로 입는 곤룡포와 함께 쓰는 관이다. 뒤쪽에 매미 날개를 닮은 모양의 얇은 검정색 망사 두 개가 세로로 붙어 있다.

왕의 것과 다르게 관료들이 쓰는 관모에는 날개가 가로로 붙어 있다. 이것이 임금이 평생 매미에게 배워야 할 마음가짐을 표현한 ‘매미의 오덕’이다.

조선은 문치(文治)의 나라였다. 매미 얼굴을 정면에서 보면 역삼각형인데, 여기에 갓을 씌우면 글월 문(文)자가 된다. 이 모습은 영락없이 갓을 쓴 선비의 모습이다. 매미가 다른 곤충들과 달리 우대를 받았던 가장 큰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얼굴 모양 자체가 글공부를 상징하는 매미를 통해서 임금도 끊임없이 학문에 정진해야 하는 존재임을 잊지 않도록 스스로 독려한 것이다.

임금과 관리들에게 익선관을 씌운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매미는 지상에서 단 7일을 울다가 사라지기 위해 7년을 땅속에서 애벌레로 지낸다. 길고 긴 인내와 시련이 강인한 매미를 만드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만인의 지존인 임금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성군(聖君)이 되기 위해서는 왕자 시절부터 끊임없이 학업에 정진하고 심신을 수양해야만 한다.

세자책봉의 관문을 거쳐 훗날 임금의 자리에 올랐을 때, 비로소 힘든 인고와 수양의 과정이 나라를 이끌 동력으로 생성되는 것이다. 마치 애벌레 기간이 없는 매미가 나오듯 간혹 왕자 시절, 인고의 시간을 보내지 않은 왕이 보위를 잇는 경우가 있었다.

정통성 측면의 항력이 가중된 요인도 있다. 그보다 조선 후기, 재임 중 잦은 사화와 문란을 겪는 등 치세가 약했던 왕들은 이같은 과정의 생략과 무관하지 않다.

오랜 기간 땅속에 있다가 밖으로 나와 짧게 살다 죽는 매미처럼, 긴 고생 끝에 관리가 되는 꿈을 이루었어도 ‘매미의 오덕’에 반하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자칫 꿈이 수포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옛사람들은 공직자들에게 매미의 오덕을 새기도록 했는데 오늘날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익선관을 쓰고 있는지 궁금하다.

새용산신문 기자  kdy33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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