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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배 칼럼】그들 부모는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았다.
2023년 08월 26일 [새용산신문]


전 한국가스기술공사 감사

 

우리말에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자식을 앞서 떠나보낸 부모로서 자신을 낳아준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자식을 보내는 슬픔이 더 큼을 이르는 말이다.

생각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럽다. 이와 비슷한 말로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을 표현한 단장지애(斷腸之哀)가 있다.

중국 동진의 환온(312~373)이란 장수가 346년 촉(蜀)을 정벌하려 양자강 중류 협곡(삼협·三峽)을 통과할 때 일이다.

그의 부하 한 사람이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아 배에 실었다. 자기 새끼가 붙잡혀가는 것을 본 어미 원숭이가 강가에서 슬피 울부짖으며 어쩔줄 몰라했다.

이윽고 배가 출발하자 어미 원숭이는 험준하기 이를데 없는 절벽길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배를 쫓아왔다. 배가 100여리 가량 간 뒤 이윽고 강기슭에 닿자 어미 원숭이가 필사적으로 배에 올랐다.

그러나 왠일인지 배에 오르자마자 어미 원숭이는 쓰러져 죽고 말았다. 새끼를 빼앗긴 어미가 불안 초조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필사적으로 쫒아오느라 탈진했던 것이다.

사인을 알아보고자 배속을 갈라보니 창자가 마디마디 잘려있더란다. 단장(斷腸)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새끼를 잃은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에 견줘 이르는 말이다.

세상사에서 누구에게든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들을 요즘 들어 종종 접하게 될 때마다 가슴이 저며온다.

“해병대 가족의 일원으로서 국민과 함께 해병대를 응원하며, 해병대가 더욱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항상 지켜보겠다.

정말 원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수근이가 이 자리에 같이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는 심정 뿐이다.”

“예쁜 딸내미와 함께한 지난 세월이 아빠는 행복했는데 딸내미는 많이 아팠구나. 지켜주지 못한 못난 아빠를 용서해다오. 부디 그곳에서라도 행복하기를 바란다. 부디 그곳이 너의 희망이 되기를 간절하게…. 아빠가”

수해 실종자 수색작전 도중 사망한 해병대 장병 고(故) 채수근 상병(20),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삶을 달리한 2년 차 새내기 초등교사.

지난 주, 젊은 두 청춘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알이고 쓰린 심정이 가슴 깊이 꽂힌 듯했다. 도를 더해가는 ‘학부모 갑질’로 분노한 교사들 집회에서 숨진 교사의 아버지가 보낸 영상편지에 부정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추모 영상 중 아버지의 추도 글귀가 나오자 집회 현장 곳곳에서 울음이 터진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채 상병 영결식에서 공개된 채 상병 부모가 자필 편지에서도 재발방지를 위한 원인규명을 당부할 뿐이었다.

이번 어이없는 일로 행여나 ‘귀신 잡는 해병’의 명성에 손상이 가지 않을까, 대원들의 자긍심에 상처를 주지 않을까, 거꾸로 해병대의 더 큰 발전만을 기원했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호곡은 창자를 끊는 듯 참담하다. 어떤 심정으로 이처럼 보내는 글을 썻을런지 감히 짐작도 안 된다. 하지만 그들 부모들은 이처럼 누군가를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

정작 이번 사고의 주체들은 책임공방과 서로의 ‘네탓’타령 일색이다. 교권 붕괴의 경우만 해도, 가정교육 실종이 주요 원인 중의 하나라는 게 폭넓은 인식이다.

옛말에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고 했다. 극적인 역설(逆說)지만 이보다 나은 변증법적 훈육방식도 없다.

자녀 습관이나 버릇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당장 좋게만 해주는 것이 오히려 해롭다는 경구다.

순직한 고(故) 채수근 상병 사망 경위와 관련해서는 수사 권한이 없는 해병대가 자체적으로 확인한 사실관계를 언론에 공표하겠다고 애둘러 예고했던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은 지난해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애초에 군인 사망 사건의 수사 권한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일찍이,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나라 왕 합려에게는 초나라에서 쫓겨난 사람인 신하 오자서와 백비가 있었다.

합려는 먼저 오자서의 재능을 중요하게 여겨 신하로 받아들이고 이어 오자서가 백비를 추천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백비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니 오자서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충고는 고맙지만 지나친 말이오. ‘하상가’라는 노래에 이런 말도 있지 않소? ‘같은 병을 앓으니 서로 불쌍히 여기고 같은 걱정이 있으니 서로 구해 주네.

놀라서 나는 새들은 서로 모여서 날아가고 여울 밑의 물도 함께 모여 흐르네.’ 우리는 똑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으니 서로 도와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고사성어가 나온 유래다. 이번 사고는 온 국민의 아픔이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고 피해자들이다.

얼마나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인가. 이 마음이 어디로 갔는지 찾아보기 힘들어진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생각이다.

새용산신문 기자  kdy33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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