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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군과 폭군, 그리고 충신과 간신(12)
송병승
본지 논설위원장
작가, 칼럼니스트
이봉창의사선양회 이사
호국영웅연제근기념사업회 이사
2022년 03월 18일 [새용산신문]

제11대 중종(中宗, 1488~1544, 재위 1506~1544, 38년 3개월)은 성종의 차남이다. 연산군의 이복동생으로 형의 광인(狂人) 행태를 밟지 않으려고 선정을 했다. 국방, 민생, 인재등용, 교육, 출판문화, 의료 등 혁신을 했다. 그런데 본인은 검소한 생활로 일관했는데 자녀들은 씀씀이가 많고 사치에 물들어 이른바 가정교육이 허술했다. 백성이 굶주리는데 걱정만 하고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신하를 제어하지 못했다. 기묘사화(己卯士禍, 중종 14년 1519)가 치명타이다.

왕의 권한을 부여하는 왕도정치를 내세운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일대 개혁을 외치며 충신과 간신을 가리어 홍경주, 김전, 고형산 등 기존 훈구세력이 중종에게 조광조는 왕권 찬탈을 꾀한다고 밀고에 가까운 탄핵을 상소하여 조광조는 사약을 받고 죽었다. 여기에 김정, 김구, 김식, 윤자임, 박세희, 박훈, 홍언필, 이자, 유인숙, 김안국, 김정국 등 수많은 개혁파가 사사당하고 귀양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상대 훈구파는 기세 등등 김전은 영의정, 남곤은 좌의정, 이유청은 우의정이 됐다. 이는 중종이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가를 구분 못하는 우유부단 자질의 문제이다. 살아 생전 조광조는 중종반정으로 나는 충신이라고 하며 빌붙은 기회주의자를 가려 정사를 행하려고 한 우국충정이었다. 예나 이제나 최고 권력자 앞엔 별의별 군상이 모이고 있다. 눈과 귀를 가리는 가짜 충신과 소신 있게 충언, 고언, 간언을 하는 진짜 충신을 냉철히 판별하는 통치술, 곧 리더십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한마디로 참모를 잘 써야 한다. 제12대왕 인종(仁宗, 1515~1545, 재위 9개월)은 지극한 효자로 약술한다. 13대 명종(明宗) 어머니 문정왕후가 죽이려했고 경빈박씨가 아들 복성군을 왕위계승을 위해 1527년 작서의 변, 1533년 나무인형사건 등 숱한 역경을 겪었다. 불에 타서 죽을 위기에 나 하나 죽으면 된다 희생할 각오가 있었고 중종 승하 후 5개월간 식음전폐, 명종(경원대군)에게 왕위계승을 위해 자식을 낳지 않았다는 기록 등 그는 분명 효자요, 아내 사랑이요, 우애 있는 자로 성군에 앞서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인물로 올려놓는다. 앞의 중종시대에 주요한 인물이 있어 빼놓지 않고 추가한다. 서경덕(徐敬德, 1489~1546)과 황진이(黃眞伊)이다. 서경덕, 박연폭포, 황진이는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유명하다.
서경덕은 무소유(無所有)의 삶으로 학문에 몰두, 이황(퇴계) 이이(율곡)의 학파에서 이기일원론의 이이편에 섰다.

초가를 짓고 여색을 멀리해 황진이의 유혹을 뿌리쳐 나중에 스승과 제자가 됐다. 10년 수도승 지족선사는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 파계되었는데 대비가 된다. 황진이는 양반 아버지의 서녀로, 또는 장님의 딸로 출생이 정확하지 않은데 그의 미모에 상사병으로 죽은 총각, 폐인이 속출했다. 진이는 예능에 천재였고 지성을 겸비해 기생으로서 품위가 여느 기생에 모범이어서 낭만파, 자연파라 일컫는다. 인생이 일장춘몽이라고 하며 유언에 내가 죽으면 묘를 쓰지 말고 냇가에 버려 개미, 까마귀, 솔개의 먹이가 되라고 했다.

청산리 벽계수야, 동짓달 기나긴 밤 등의 시조를 통해 부귀영화 남겨 간의 사랑이 무엇인가 물음표를 던졌다. 경기도 장단군 판교리에 무덤이 있고 입우물고개에 약수가 있다. 서경덕과 황진이를 꺼낸 이유는 우리네 삶이 욕망 속에 희극과 비극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각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서울경기행정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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