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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천 경주김씨상촌공파종중 총무이사 / 상촌신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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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속에 물들지 않는 삶ㅡ상촌 김자수 선생과『채근담』의 가르침
“세상에 휘둘리지 말고, 본연의 삶을 지켜야 한다.” 이 말은 단지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상촌 김자수(金自粹, 1351~1413) 선조가 삶으로 증명한 실천의 언어였습니다. 자연의 자율성과 맑음을 예찬한 『채근담』 후집 제123장은, 바로 상촌 선조의 삶의 철학을 대변하는 문장처럼 느껴집니다.
山肴不受世間灌漑, 野禽不受世間豢養, 其味皆香而且冽. 吾人能不爲世法所點染其臭味, 不逈然別乎.
“산나물은 인위적으로 가꾸지 않아도 향기롭고, 들새는 길들여지지 않아도 그 맛이 맑다. 사람 또한 세속에 물들지 않는다면, 그 품격이 속세와 구별되지 않겠는가?”
홍자성의 이 말처럼, 상촌 선조는 세속의 관직과 명예, 권세와 이익에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는 격변의 시기에 스스로 벼슬길을 내려놓고 낙향하였으며,
『귀전록』을 남기며 조용한 자연 속에서 진리와 도를 닦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은둔이 아니라, ‘세속에 물들지 않기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자연의 기품, 사람의 기상
상촌 선조는 삶은 마치 외진 산골에 자라나는 야생화와도 같았습니다. 겉보기엔 소박하고 눈에 띄지 않지만, 그 뿌리는 깊고 향기는 그윽했습니다. 그는 자연 속에서 독서를 즐기며 후진을 기르고,
내면을 수양하며 세상과 거리를 두었습니다. 하지만 그 삶은 결코 무위나 도피가 아니었습니다. 진실로 고결하고 맑은 인격을 지닌 선비로서, 그는 묵묵히 시대를 응시하며 스스로를 지켜냈습니다.
그가 제자에게 남긴 〈증제자시(贈弟子詩)〉에는, 물질이나 명예보다 중요한 삶의 방향과 인격 수양에 대한 당부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이는 『채근담』에서 말하는 “자연의 맛, 순수한 기품”과 맥을 같이합니다.
도의(道義)로 살아간다는 것
상촌 선생은 시대의 흐름을 쫓기보다, 도의(道義)의 길을 좇았습니다. 병상에서 남긴 〈병중자성〉에서는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고백이 묵직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는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바라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상촌 선생의 삶은 『채근담』이 강조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삶”의 구현이자, 자연에 기대어 인간 본연의 도리를 지키려는 선비정신의 정수였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속도와 성공, 인정과 경쟁을 강요받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자연스러움’과 ‘자율’을 지켜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촌 김자수 선조의 삶은 지금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진정한 기품은 단정한 외양이 아니라, 세속에 물들지 않으려는 내면의 의지에서 비롯됩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자기 뿌리를 지켜내며 살아가는 일. 그것이야말로 상촌 선조가 남긴 삶의 유산이며, 『채근담』과 만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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